질문 :
요즘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수행에 많은 도움을 받고있음에 감사함을 드립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칼럼을 읽던중 궁금한 점이 생겨서 선생님께 추가하여 질문을 또 드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천안 또는 혜안은 수행자 자체의 노력으로는 열기가 어렵다고 들었습니다.(최상근기가 아니고는) 그것을 열기 위해서는 스승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고, 열었다 하더라도 본인이 열심히 하지 않으면 도로 닫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여기서는 어떻게 혜안을 열고 백회 신위 인당을 어떻게 사용하여 관광을 하는지 즉 빛을 보는(관하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관광과 관음이 삼매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다시 말해 마음을 깨치는 것만으론 완성된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인지요?
지혜로운 선생님께 청명 합장!
답변 :
일단 천안은 쉬이 열수가 있습니다. 혜안은 그리 쉽지는 아니 하지만 그것도 그리 어렵지 아니 합니다.
스승이 필요한 이유는 그러하게 여는 방법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또는 스승은 진아 상태이거나 진아상태에 가깝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앞에 있으면 그것을 느끼게 되며 그러하므로 그러한 상태에 공명하게 됨으로 좀더 쉬울수가 있겠지요. 허나 배우는 분 공부 정도에 따라서 공명하는 상태가 다르게 됩니다.
혜안은 무심삼매중 첫번째 즉 공무변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본래마음이 드러나며 그 본래마음 상태가 바로 혜안 입니다.
관광(觀光)과 관음(觀音)중에서 관광은 텅빈삼매가 되는데 있어서 눈을 쓴 여러 방법중에 하나입니다. 즉 허공을 보아도 되고 대상을 보아도 되고 등등의 10가지 수행 대상중에 하나 이지요. 소리로서 텅빈삼매에 드는 방법도 많이 있습니다. 대체로 안이비설신의 중에서 제일 텅빈삼매 드는데 있어서 용이한 방법이 "눈"입니다. 그 다음이 "귀"입니다.
빛을 보는 방법만 하여도 참 많습니다.
그러하므로 이야기 하기가 쉽지 아니 합니다.
다만 청명님께서 관광과 관음이라 하셨고 또한 인당을 말씀 하셨으므로 그것에 맞추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백회나 신위로 빛을 보게 되는 경우에는 일심이 됩니다. 밖의 대상들 사물들에 기울어진 마음이 내면으로 향하는 것은 일심이 되는 방법입니다. 즉 밖에 기울어진 마음이 모두 사라지고 빛의 상태만 남는 것이 일심입니다. 이러할때 "눈"은 풀어진다고 표현해도 좋겠고요. 또는 "안광"이 거두어진다고 하면은 좀더 엄밀한 이야기가 됩니다. 또는 이러할때 "보는것"이 아니며 "보여지는" 상태가 됩니다.
인당을 이용하여 빛을 보게 되면은 무심삼매가 이루어지기 용이합니다. 이러할때 밖으로 치달리던 마음이 일단 백회나 신위에 의하여 내면으로 당겨졌다가 다시 인당에서 멈추는 것이 됩니다. 겉으로 표현하기는 이와 같이 하였지만 마음이 인당에서 멈춘다는 것은 사실 마음이 사라진 것입니다. "생각이 모두 끊어진 상태"가 됩니다. 물론 기절이나 혼절이 아니고요. 눈으로 이야기 해볼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안광이 밖으로 쏟아집니다. 그것을 일단 백회등에 집중 또는 주시하여서 밖으로 향하는 안광을 내면으로 거두어 들입니다. 허나 그것역시 여전히 "한생각"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그 안광을 "눈에서 딱 멈추게 됩니다" 즉 안광이 밖으로 나아가지도 안으로 들어가지도 아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할때 "눈"은 "보는자"도 아니고 "보여지는 자"도 아니며 유리창 같이 "창"이 됩니다.
요약해본다면 바깥 세상에서 온통 "빛"만 보여질때가 바로 일심상태입니다. 그 빛들이 모두 사라지면 무심상태입니다. 빛들이 사라진다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텅빈삼매에서는 눈의 "보는작용"이 끊어지기,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생각"도 사라지고 "보는작용"도 사라집니다.
마음을 깨치는 것만으로 완성입니다. 헌데 마음을 깨치는 과정에 필히 텅빈삼매 되며 필히 외연삼매 됩니다.
그와같이 물아일체 부터 우아일체가 필히 됩니다.
위와 같이 마음을 깨치는 과정에 필히 조견(照見)이 됩니다. 즉 꿈에서 깨어나게 되며 깊은잠에서도 깨어있게 됩니다.
필히 각성만 오롯한 상태가 됩니다.
만약 위와 같은 여정이 없다면 마음을 깨쳤다는 것이 머리 즉 제6식으로 깨쳤다고 하는 것이 될겁니다.
마음을 깨쳤다는 것은 두가지로 볼수 있겠습니다. 1.생사해탈 2.온전한평화(번뇌가 모두 사라졌다)
깨달음이란 위의 둘을 벗어 날수가 없을 듯 합니다. 헌데 둘은 다른듯 하지만 종래엔 다르지 아니 합니다.
허나 생사해탈을 먼저 할 방법은 없습니다. 허나 온전한평화가 되면 저절로 생사해탈이 됩니다. 즉 부처님이 "갈애의 해탈"이 "생사의 해탈"이라고 하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하면 온전한평화란 무엇인가 하면 번뇌로부터의 완전한 해탈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번뇌의 원인만 알면 되겠지요. 번뇌의 원인은 1.탐 2.진 3.치 입니다.
탐이란 좋아하는것에 대한 집착과 나아가서 싫어하는것을 멀리하려는 집착도 포함됩니다. 또는 싫어하는 것을 멀리 하려는 것을 "진"으로 보셔도 됩니다. 즉 탐이란 집착과 저항으로 볼수 있겠습니다. 진은 내가 화를 내었건 상대가 나에게 내었건 번뇌가 됩니다. 치의 어리석음은 교만 자만 아만등등으로 상대를 비교하여서 깔보게 되면은 번뇌가 될것이요. 비교하여서 상대가 우월하다고 여겨지면 자기비하의 번뇌가 될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탐진치외에 다른 어떠한 번뇌의 원인이 있을까요? 있기는 합니다. 그것은 생노병사와 관련된 것입니다. 그외에는 찾아 볼수가 없을 겁니다.
즉 모든 번뇌의 원인은 생노병사와 탐진치라는 이야기가 성립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깨침이란 책에 이리저리 나오는 내용이 아닐듯 하며 팔만사천경 모두가 가르키는 핵심은 "탐진치"일겁니다. 마즈막에 미세한 탐이 남았을때 결국 무아가 아니면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아가 되어야 전체가 됩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탐진치 다 소멸하고 전체가 되었기에 생노병사에 해탈을 하게 됩니다.
결국 마음의 깨침이란 탐진치의 완전한소멸 그러므로 무아가 되겠습니다.
이러하게 탐진치가 소멸되다보면 별도의 마음공부나 수련 필요없이 위에서 말하였던 일심 나아가서 무심삼매의 여러 여정이 저절로 벌어집니다. 잠에서 깨어있는 것도 수행없이 저절로 탐진치 소멸된 만큼 벌어집니다.
탐진치가 소멸하면 할수록 번뇌가 사라지며 온전한평화가 되며 전체의 본래마음이 드러납니다.
허면 이제부터 탐진치를 소멸하면 되는데 문제는 지금 이전 즉 과거에 쌓여진 탐진치에 의한 번뇌는 남겨 놓고 갈 것이냐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이러할때 잘 아니 됩니다. 그러므로 과거 것 부터 참회 하고 나면은 탐진치로 인하여 벌어진 번뇌들을 알고보며 이제부터 소멸해 나가는 것이 더 용이 하여집니다. 참회는 상근기가 지금 바로 과거를 돌아보고 번뇌를 소멸하고 그 실체를 아는 것이 되며 계율은 참회가 힘이 들때에 지금부터 미래까지 바른말 바른행동 바른생활(직업)을 하여서 탐진치를 소멸해 나가는 길이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돈수법과 점수를 이야기 하였습니다. 돈수는 "몸과 마음이 나가 아님을 진정으로 알기만 하여도 방편을 짓지 아니하고, 곧 여의면 깨달음이라 점차도 없느니라" 즉 무아임을 진정으로 알기만 하여도 수행은 필요가 없으며 시간이 걸릴뿐이며, 어느날 진정으로 몸과마음이 내가 아니었구나 하고 버려진다면 깨달은 것이라는 이야기 이지요.
점수는 "생각을 버리고, 생각을 버리겠다고 굳게 집착하는 까닭에 생기는 생각도 버리고, 버렸다는 생각도 버리고,....................이와 같이 한후에 깨달음이 있다고 하여도 깨달음이 아니요. 깨달음이 없다고 하여도 깨달음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무심을 말하는 것이지요. 끝없이 생각을 버리고 나서도 깨달음이 있다, 없다 하는것 역시 생각에 불과 하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완전한 늘 무심상태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러하므로 우리는 처음부터 "무심"이라는 공부로 가려고 합니다.
허나 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악 - 선- 일심- 무심- 무아- 전체
일심 무심공부 좋긴 하지만 잘 아니 되는 이유가 일단 참회 또는 계율을 잘 지켜서 바른생각이 되어야만, 또는 과거에 쌓여진 번뇌들을 참회해서 깨긋하게 하여야만 일심 무심이 잘 됩니다.
일심이 잘 아니 되는 이유가 오락가락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한 생각은 과거에 쌓여진 번뇌와 미래에 대한 근심 바램입니다. 그중 과거 생각은 참회로 녹여 낼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남겨 놓고 일심 공부 한다는 것은 주머니에 무거운 돌들을 집어넣고서 몸이 무겁다고 어떻게 가볍게 할까 하고 여기는것과 다르지 아니 합니다.
좋으신 질문 감사합니다. 청명한 날씨입니다. 하늘 보며 계합하기 딱 좋은 날이군요. 순일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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