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전후 오랜 전쟁에 시달린 대중들의 마음을 화엄수행과 신앙으로 달래준 분이 있으니 해동화엄 초조로 널리 알려진 의상스님(625-702)이다.
스님은 범어사의 창건주로서 범어사의 스님으로서는 한국 불교사에 가장 빛나는 고승이시다. 속성은 김씨로서 29세에 황복사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당나라에 불교가 흥성함을 듣고 서기 650년 원효 스님과 함께 중국에 가려고 요동까지 가서, 원효 스님은 무덤사이에서 자다가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도리를 깨달아 돌아오고, 스님은 당나라에 갔다. 처음은 양주에 있다가 662년에 다시 종남산 지상사 지엄(智嚴) 스님에게서 현수(賢首) 스님과 함께 {화엄경}을 깊이 연구하였다.
스님께서 연구에 열중하던 중 당나라에서 신라의 사신 김흠순(金欽純)을 가두고 신라를 치려고 하매 스님이 670년 본국으로 돌아와 그 사실을 보고하였다. 왕이 미리 그 대책을 세워 무사하였다.
현수 스님이 화엄수현기(華嚴搜玄記)를 짓고 부본(副本)을 보내면서 편지 한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의상스님의 저서로 {법성게}라고 불리우는 {화엄일승법계도}와 {법계품초기}, {대화엄십문간법관}, {괄진일승추요}, {천세구경}, {백화도량발원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