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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동산(東山) 큰 스님 1

포교국장스님 | 2010-08-13 | 조회수 : 430

범어사 동산(東山) 큰 스님은 현대한국불교 중흥조 가운데 한분이셨다.

동산 큰스님은 1890년 충북 단양에서 출생, 서울에 있던 경성의전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고모부였던 오세창(吳世昌) 선생의 분부로 백용성

(白龍城) 스님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구하였다.

이 자리에서 백용성 스님으로부터 “육신의 병을 고치는 사람이 의사인데,

중생의 병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배가 아프고 종기가 나고 상처가 나는

것은 육신의 병이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마음의 병이니, 육신의

 병만 고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라는 법문을 듣고 홀연히 발심,

양의사가 되는 길을 내던지고 용성 스님을 은사로 삭발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그 후 스님은 석왕사, 해인사를 거쳐 부산 범어사 조실로 계시면서 기라성

같은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성철 스님을 비롯해서 광덕스님, 지유스님,

능가스님, 정관스님, 무진장 스님 등 걸출한 범어사 인물을 배출했다.

청담스님, 효봉스님, 금오스님 등과 더불어 불교정화운동을 펼치셨고

 1965년 4월24일 세수 75세, 법랍 53세로 범어사에서 열반에 드셨다.

 

 

 

‘설법제일 동산’이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스님의 법회는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아무리 가난한 절도 동산 큰스님이 한 번 다녀가시면서 법회를

열기만 하면 “3년 먹을 양식이 들어온다”고 할 만큼 ‘복을 몰고 다니는 큰

스님’으로 사부대중의 추앙을 받았다.

동산 큰스님이 출가하여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은사이신 용성 스님은

제자를 큰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당시 평안도 맹산 우두암에 머물고 계시던

한암스님 문하로 제자 동산을 보냈다. 그러나 한암 스님은 얼른 동산을

받아주지 않았다.

 

 

 

“내가 자네를 받아주지 못하겠으니 돌아가라고 하면 어찌 하겠는가?”

한암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자 동산은 결연히 그 자리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만일 스님께서 내치시면 암자 밖 바위틈에 토굴이라도 파고 먼발치에

서라도 스님을 모시겠습니다.”마침 날이 어두워지면서 맹수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암 스님이 다시 물었다.

 

 

 

“저 산짐승들 소리를 듣지 못하는가? 암자 밖에는 사나운 산짐승들이

우굴거리는데 그래도 바위틈에 토굴을 파겠는가?”

“예 스님. 도를 구하지 못하고 취생몽사하느니 차라리 도를 구하고 토굴에서

산짐승 밥이 되는 게 나을 것입니다.”

동산이 이렇게 결연한 각오로 대답을 올리자 한암 스님이 빙긋이 웃으셨다.

“남의 집 자식이라 내쫓지도 못하겠구나. 여기서 머물게나.”(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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