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이야기 다각실 11
차를 마시는 일은 일상의 다반사(茶飯事)라 했다.
우리들이 밥 먹고 잠을 자듯이 차를 마시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움이다. 출가한 우리
스님들에게 가장 가까운 벗이 있다면 차일 것이다.
혼자 고즈늑히 앉아 차 한잔을 하는 여유는 존재의 실상을 관조하는 백미라 할 만하다.
복잡한 일상을 벗으나 차 한 잔 마셔보라
확연히 드러난 자신을 만난다.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 솔바람의 향음, 대웅전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 지고 지순한 아름다움은 차와 함께 느껴지는 것들이다.
차(茶)
한문을 풀이 하면 풀초, 사람인, 나무목이다.
풀인가하면 풀도 아니고 나무인가 하면 나무도 아니다.
그러나 풀과 나무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지녔다.
풀은 부드러움을, 나무는 강직함을, 인생을 살면서 때로는 어머님처럼 부드럽고 때로는
아버지처럼 강직해야 한다. 차에는 분명 부드러움과
강직함이 있다. 차를 마셔 내면으로 체득할 것들이다.
국장스님들이 살고 있는 범어사 공간에도 다각실을 만들었다.
다구와 다식과 차에 필요한 물건을 갖추었다. 이 모든 것은 연수국장
오산(悟山)스님의 정성으로 마련된 것이다. 다식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경북 경산에서 생산한 대추 말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주에서
판매하는 환으로 만든 청국장이다.
우리국장스님들은 아침마다 다각실에 모여서 차 한잔한다.
차를 여러 잔 마시면 다식을 조금 먹어야 차를 더 오래 마실 수 있다.
지난 겨울 중국 서안에서 해월스님과 같이 차시장에 가서 다기를 몇 개 샀다.
다기에 글이 새겨져 있는 것을 선택했는데, 모든 다기에 글이 새겨져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글이 각인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글이 새겨져 있어도 글 내용이 신통치 않은 것도 있다. 눈을 크게 뜨고 겨우 3개를 사왔다.
사귀(思歸): 생각으로 돌아가라
여미(餘味): 여유가 있어야 차 맛을 안다.
정연(靜緣): 고요한 인연
옛 선인의 차 시(茶詩)를 옮겨본다. 東茶頌(동다송)을 지은 초의의순(草衣意恂 1786~1866)
스님의 유명한 차 시(茶詩)이다.
고래성현구애다(古來聖賢俱愛茶):옛 성현들께서는 차를 좋아 했나니,
다여군자성무사(茶如君子性無邪):차는군자와 같아 내용에 삿됨이 없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즐겨하던 애송시이다.
정좌처다반향초(靜坐處茶半香初)고요히 앉아있으면 차향음이 들려오고
묘용시수류화개(妙用時水流花開) 삼매에 들면 물 흐르고 꽃은 피더라
차를 마셔서 마음이 해맑고 순수하면 이보다 더 깊은 수행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일찍히
조사스님들은 다선일여(茶禪一如)라 하지 않았던가? 수행자에게 차를 마시는 것은 그 자체가
바로 선수행을 하는 것이라고, 조주스님은 자신을 찾아와 불법에 심오한 가르침을 묻는 스님에게
긱다거(喫茶去)라 했다. “아이고 한심한 스님아 차나 한잔 마시고 가게” 이런 뜻이다. 즉 심오한
진리란 그대 내면에 존재 하거늘 어찌 나에게 묻는가? 때문에 긱다거라는 표현은 상대방을 은근히
나무라는 표현이기에 전통찻집에 긱다거(喫茶去)를 써 붙이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범어사 포교국장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