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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 큰스님(김치에 소금) 4

포교국장스님 | 2010-08-16 | 조회수 : 499

동산 큰스님(김치에 소금) 4

 

1950년 겨울, 한국전쟁이 한참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피난지 부산은 말

 그대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마지막 보루로 남은 부산으로 수많은 피난민들이

 너도나도 모여든 때문이었다.

마지막 피난지 부산으로 모든 피난민이 모여들자 먹을 것, 잠잘 곳이 턱없이

모자랐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요, 모든 백성들의 형편이 아사직전에 이르니

사찰의 형편이라고 예외일 수가 없었다. 더더구나 왜색 대처승들이 사찰의

운영권을 손에 쥐고, 청정 독신 비구승들은 대처승들로부터 양식을 얻어먹고

사는 지경이었으니, 부산 동래 금정산 범어사의 선방인 청풍당의 살림도 말씀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조실 동산 스님은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아니한다’면서

누구나 수행하겠다고 찾아오면 무작정 받아주시는 바람에 10여명 내외였던 청풍당

 식구가 무려 84명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니 당장 그 많은 식구 먹는 것이 큰 문제였다.

 그러나 동산 스님은 천하태평이었다.

“걱정할 것 없다. 수행자가 굶어죽었다는 소리 들어본 일 없고, 수행자가 얼어 죽었다는

 소리도 들어본 일 없다.”

“양식이 모자란데 어쩌란 말씀입니까?”

“양식이 모자라 밥을 짓지 못하겠으면 물을 더 붓고 죽을 쑤어 먹으면 된다.”

“그럼 반찬은 또 무엇을 먹입니까?”

 

 

 

“그 걱정은 말고 나를 따라 오너라.”

동산 스님은 성큼성큼 걸어서 김장독 앞으로 가시더니 김장독을 열고 김치를

한쪽 꺼내보라고 명했다. 제자가 스님께 김치 한쪽을 올렸는데 직접 맛 보시더니

 야단부터 치셨다.

“김치를 이렇게 싱겁게 담그면 어쩌자는 게냐?”

“아입니더 스님. 이 김치는 짜거운 편입니더.”

 

 

 

“인석아, 전쟁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어. 그리고 피난 올 스님들이 앞으로도 많을

것이야. 이런 싱거운 김치로는 올겨울 못 넘긴다. 김칫독에 소금 한 그릇씩 더

넣도록 해라.”

이렇게 해서 청풍당의 그해 겨울 김치는 그야말로 ‘소금 할아버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앞날을 내다보신 동산 스님의 혜안 덕분에 피난 내려 온 수많은 스님들이

범어사 청풍당에서 한겨울을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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