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찰대본산금정총림 범어사
불교와 동지
불교와 동지(冬至)해마다 음력 11월은 동지달이다. 우리 절 범어사에서도 동김치를 담고 겨울 김장을 하면서 동지를 준비하였다. 보현부불자님들과 08학번 재학생불자님 80여명이 배추 3.000포기에 양념을 넘어서 김장 김치를 버무렸다. 원주실에서는 새해 달력을 만들었다. 주지스님의 선서화를 달력에 담아 그 의미를 극대화 하였다 기축년 새해에는 우리절 범어사 모든 불자님들의 가정에 부처님의 사랑과 축복이 충만하기를 기원하는 뜻이다.동지는 글자대로 일년 중에 가장 밤이 긴 날이며 동짓날을 지나면서 서서히 낮이 길어진다. 그래서 일양시생지일日陽始生之日이라하였고, 일찍이 중국 주나라에서는 동지를 “작은설(아세亞歲)”이라 하였다. 동지과 관련하여 연산동 마하사 동지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동지 하루 전, 동지불공을 하러오는 불자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온 도량을 깨끗이 청소하고 밤늦게까지 동지에 사용할 새알심을 만드느라 하루종일 동분서주한 젊은 공양주 스님은 늦잠을 자고 말았다. 얼른 잠에서 깬 젊은 공양주 스님은 옷을 입고 공양간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궁이에 있어야 할 불씨가 꺼져 재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가 젊은 공양주 스님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지금은 공양실에 행자와 공양주보살이 일을 맡아서 하고 있지만 1970년 이전에 모든 사찰의 공양주는 스님들이 도맡아 하였다. 그리고 공양주 스님은 사중에서 그 위치가 높았다.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공양주는 먹는 음식을 대중 모두에게 잘 분배해야만 했다. 이야기는 이어진다. 언제 불을 지펴 팥죽을 쑤어야 할지 젊은 스님은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생각 끝에 스님은 이웃에 사는 나무꾼 김처사 집에 가서 불씨를 얻기로 했다. 동짓날 이른 아침 매서운 찬바람을 맞으면서 김처사 집에 도착한 젊은 스님은 급한 숨을 몰아쉬며 도움을 청했다. 『여보세요, 김처사』 『아니 아침부터 공양주 스님이 웬일이세요?』 『불씨 좀 얻으러 왔어요.』 『불씨라뇨?』 『네, 그만 늦잠을 자다가 아궁이에 불씨가 꺼져서...』 『아니, 아까 행자님이 오셔서 불씨를 얻어갔는데 불이 또 꺼졌나요?』 『네엣?』 젊은 공양주 스님은 무슨 소린가 싶어 놀랐다. 『행자님이요?』 『네, 조금 전에 새로 온 행자라고 소개 하면서 팥죽 한 그릇 먹고 불씨를 얻어 갔어요.』 김처사의 말에 깜짝 놀란 젊은 공양주 스님은 다시 바쁜 걸음으로 절로 향했다. 절에 도착하자마자 부엌으로 들어간 젊은 공양주 스님은 다시 한 번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궁이에는 장작불이 훨훨 타고 있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가마솥에는 더운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앞뒤 가릴 겨를도 없이 스님은 급히 팥을 삼고 죽을 쑤기 시작했다. 바로 이 때 주지 스님이 들어오셔서 물었다. 『여보게 공양주! 아직도 공양이 안 되었나?』 『네, 곧 올리겠습니다.』 『어서 올리도록 하게나.』 크게 꾸중 듣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긴 공양주스님은 서둘러 한 그릇 떠서 대웅전에 공양을 올렸다. 다시 팥죽을 한 그릇을 떠서 나한전으로 간 젊은 공양주 스님은 나한님 앞에 팥죽을 내려놓다가 그만 까무러치게 놀라고 말았다. 『아이구 나한님.』 빙그레 웃고 있는 나한님의 입가에는 붉은 팥죽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마하사는 나한도량으로 유명하다 청도 운문사와 더불어 영남의 영험있는 나한도량이다. 나한은 빈두로존자인데 부처님께서 열반 하실 때 빈두로존자를 불러 “너는 신통력이 있으니 열반에 들지 말고 말세 중생들을 위하여 그들의 복전이 되고 중생을 구제하라” 하셨다. 그래서 나한도량에서 지심으로 기도하고 예불 올리면 나한님이 현신하시고 소원을 들어 준다. 여기 젊은 공양주스님도 마찬가지, 나한님의 무언의 사랑과 격려를 보여 주신 것이다.동지가 지닌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자 중국의 역사책 ‘춘추(春秋)’에 보면 아래와 같은 글이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이 우주가 생성되기 전에 반고씨라는 사람이 살았다. 반고씨는 신(神)과 같은 존재였는데 몇 천만년을 살면서 우주를 창조하였다. 두 눈 가운데 한 개를 뽑아 해를 만들고, 한 개는 달을 만들었다. 머리카락은 돌멩이와 나무를 만들고, 살결은 흙을 만들고, 피는 뽑아 흐르는 물을 만들어 우주와 자연과 천지만물을 있게 하였다. 반고씨가 죽고 수 만년이 지나 ‘여와’라는 여신(女神)이 이 세상을 관장하게 되었다. 이 때 인간도 여와神과 함께 살게 되었다. 여와神은 다섯명의 신하를 거느리고 살았는데 다섯명 모두 신과 같은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여와神을 보필하며 동. 서. 남. 북. 중앙의 오방을 관리하면서 수, 화, 금, 목, 토를 담당하게 되었다. 수(水) → 북(北) → 겨울 → 검정색 화(火) → 남(南) → 여름 → 붉은색 금(金) → 서(西) → 가을 → 흰색 목(木) → 동(東) → 봄 → 푸른색 토(土) → 중앙(中央) → 직계제자 → 황색여와神은 이 다섯명의 神과 함께 백성의 행복과 안녕을 베풀면서 태평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우주에는 생성소멸(生成消滅) 있고, 인간에게는 생노병사(生老病死) 있으며,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다고 했다. 부처님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일까. 북쪽을 관장하는 수신(水神)이 여와神의 남동생이며 공공(公共)이라는 이름의 神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맡은 책임을 다 하지 않고 물을 가지고 장난치며 횡포를 부리고 백성들을 괴롭혔다. 여와神은 동생에게 타이름과 꾸짖음을 여러 번 했지만 듣지 않아 火神, 金神, 木神, 土神을 불러서 水神을 아주 먼 곳으로 축출하게 된다. 여와신의 동생 공공(수신)은 달아나면서 지구를 받치고 있던 기둥 4개 가운데 한 개를 무너뜨리고 갔다. 여와神은 오색실을 가지고 기울어지는 지구를 잡아매어 놓았다. 지구가 조금 기울어진 것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비가 오면 무지개가 서는 것이 여와神의 오색실 때문이며, 공공(公共)이 떠나면서 “내가 쫓겨가는 것이 억울하고 원통하다. 그렇지만 일 년에 한 번 해가 가장 짧은 동지날에 와서 인간이 사는 가정에 횡액을 줄 것이다.”라고 했다. 여와神은 백성들에게 “공공씨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붉은색이며, 때문에 팥죽을 쑤어 대문에 놓아 두거나 뿌리면 공공씨가 침범하지 못한다.”라고 하면서 대문 입구나 문밖에 팥죽을 쑤어 놓거나 뿌리게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팥죽을 먹거나 대문앞에 놓아두고 집안에 횡액이 침범하지 못하고 일체의 잡귀가 근접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것이 동지팥죽의 유래이다. 붉은 색은 모든 잡귀를 제멸하고 사악함을 없애고 가정에 평안과 안녕을 가지고 온다. 구병시식을 할 때도 자세히 보라 스님들이 입으로 염불을 하면서 해백생원가다라니 “옴 암아악”“옴 암아악”“옴 암아악”........을 한다 구병시식을 하는 구병환자가 과거전생부터 얽혀있는 원혼이 있으면 모두 소멸되고 해원하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스님의 오른손에 팥을 들고 시식단을 향하여 힘차게 던진다. 팥은 액을 쫓는 성물이다. 그러면 귀신이 도망간다. 부적을 쓸 때 경면주사를 사용하는 것도 모두 제액을 방지하기 위하여 붉은 색을 쓰는 것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자식을 위하여 정성을 들였는데 팥죽을 먹어야 겨울에 추위를 견디고 공부하는데 잡스런것이 침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또 동지에는 팥죽속에 새알(새알심)을 먹는데 그것은 우리나라 옛 고사에서 시작된다. 조선시대 과거보러 가던 선비가 비둘기 알을 먹고 시험을 보고 합격 했는데 그 소문이 일파만파로 펴져 비둘기 알을 새알처럼 만들어서 팥죽과 함께 먹게 되었다. 윤달이 들면 그 다음해는 반드시 애기동지가 된다. 동지가 음력으로 11월 초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 했다. 가정에서는 애동지가 들면 팥죽을 쑤지 않는 관습이 더러 있다. 그러나 사찰에서는 애동지와 무관하게 팥죽을 쑤고 새해달력을 나누어 주고 신년을 설계하게 한다. 양력은 일년이 365일이지만 음력은 354일과 5시간 44분 정도 시간이 남는다. 올해 무자년 동지시간이 오후 9시 3분이면 내년 동지시간은 오전 2시 47분이다. 대략 6시간 정도 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동지는 양력으로 생각하면 수월하다 해마다 12월 22일이다. 그러나 다음해 윤달이 들면 양력 21이 동지이다. 내년 2009년에는 윤달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 동지는 양력 2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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