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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이야기 낭백선사 10

포교국장스님 | 2010-07-25 | 조회수 : 560
낭백스님이 죽어 관찰사되다.

낭백浪伯스님을 낙안선사(樂安禪師)혹은 만행수좌(萬行首座)라고 불린다. 일찍이 범어사에 출가하여 부지런히 수행하였으며, 특히 육바라밀 가운데 보시바라밀을 실천덕목으로 삼아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남에게 베풀었다. 그리고 반드시 환생하여 스님들이 받는 부역과 잡역을 면제하리라 원력을 세우고 3가지 유언을 남기고 입적하셨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 배불숭유(排佛崇儒) 정책은 극에 달한다.
유교는 득세하고 불교는 억압과 핍박을 받는데 전국의 모든 사찰에 부여된 부역과 노역과 잡무는 형언하기 어려웠다. 무려 40여종 부역이 주어졌다고 전한다. 종이, 붓, 노끈, 짚신, 새끼, 지게, 특수 농산물, 공산품, 산성 쌓기, 봉수대 지키는 일등 온갖 물품을 관청에 올려야 했다. 범어사도 36가지 물품을 만들어야 했는데 스님들은 공부나 수행보다는 오로지 나라에서 부과된 부역에 진력해야했다.

낭백스님은 이러한 당시의 사정을 뼈아프게 개탄하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스님들에게 부여된 노역만은 면죄해야 한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설사 금생에 안되면 다음 생이라도 부역을 면하고 마음껏 수행할 수 있게 하리라 마음먹고 원력을 세웠다.
"금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내생에는 나라의 고급관리가 되리라. 그리고 관리의 특권으로 범어사 스님들의 부역을 혁파하리라." 하고 그 날부터 힘이 닿는 대로 복을 짓기 시작하였다.
지금의 기찰 부근, 그러니까 동래를 들어가고 나가는 길목 큰 소나무 밑에 샘물을 파서 행인들에게 급수공덕을 하고, 넓은 밭을 개간하여 참외, 오이, 수박 등을 심어서 지나가는 길손에게 무한정 보시하였으며, 밤에는 짚신을 삼아서 모든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낭백선사는 늙은 몸뚱이까지도 보시하고자 돌아가실 때에는 범어사 뒷산 밀림 속에 들어가 굶주린 호랑이에게 자신의 몸을 던졌다고 전한다.

스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세 가지 유언을 남겼다. 첫째 나라의 고급관리가 되어 올 때에는 모든 관리가 다 일주문 앞 하마(下馬)에서 내리는데 자신은 어산교 앞에서 내리겠으며, 둘째 자신이 쓰던 방을 봉해 두었다가 스님 스스로가 열 것이며, 셋째 사찰의 어려움을 물어서 해결할 것을 약속하리라 라는 것이었다.

낭백스님이 돌아가시고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순상국(巡相國)이라는 높은 벼슬을 하는 경상도 순찰사(관찰사)
조엄(1719~1777)이 새로 부임하여 각 군을 시찰하게 된 그는 동래군에 들러 범어사에 오게 되었다. 스님들은 언제나 지방관리가 오면 그러했듯이 주지스님 이하 모든 대중들은 어산교까지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순상국 조엄은 일주문까지 말을 타고 올라가는 상례를 깨고 어산교 앞에서 말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순상국(순찰사) 조엄은 "처음 찾아오는 사찰이지만 내가 평소에 많이 보아오던 모습이며 낯설지 않다"라고 하면서 주지스님에게 범어사 내력에 대하여 자세히 묻는다. 주지스님은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범어사는 임진왜란으로 사찰이 모두 전소되고 묘전스님과 계환스님등 사찰을 다시 중건 중수하고 지금은 각종 부역과 잡무에 시달리고 있으며 근년에 입적하신 낭백스님은 스님들의 부역 면제하리라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는데  자신의 방을 아무도 열어보지 말라 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범어사 경내를 돌아본 조엄은 낭백스님의 주석하던 방 앞에 와서 수 십 년 동안 봉해둔 문을 뜯고 열어보니, 개문자시폐문인(開門者是閉門人)이란 스님의 친필유묵이 몇 십년의 세월 속에 얼룩져 있음을 보았다. "문을 여는 사람이 바로 문을 닫은 사람이다"라고 씌여 있었다. 순상국 조엄은 조금 놀랐다. 자신이 과거생에 낭백스님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조엄은 동래부사에게 스님들에게 주어진 부역을 모두 혁파하라고  명한다. 이때부터 스님들에게 부과된 부역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순상국(巡相國) 조엄(趙嚴)의 기리는 불망비(不忘碑)가 어산교에서 100m 정도 범어사 옛길을 따라 내려가면 길옆에 5개의 비석이 있는데 그 중에서 '순상국조공엄혁거사폐영세불망단(巡相國趙公嚴革袪寺弊永世不忘壇)'이라는 비문이 중앙에 서 있다. 그리고 당신이 내가 환생하여 나의 방문을 열어 볼 것이다라고 말한 요사채는 지금 범어사 서지전(西持殿)이라고 한다.

중생은 업력으로 살고 보살은 원력으로 산다.  자신의 원력이 지극하면 불보살이 되어 다시 중생을 구원하려고 환생한다. 낭백스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면제시켜 줄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이다. 보살은 멀리 있는 분이 아니다. 늘 우리 곁에 있다. 낭백스님이 그런 분이다.

범어사 포교국장 일광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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