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8월 31일, 박물관 1층 전시실
광복 80주년 기념 현판 첫 공개
현대 미술과 고판 유물의 조화

금정총림 범어사 성보박물관(관장 정오 스님)이 고요한 산사의 공간에서 현대사회에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특별기획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大慈大悲’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박물관협회 주관의 ‘2025 박물관·미술관 주간’ 기획사업의 일환으로, 5월 2일부터 8월 31일까지 범어사 성보박물관 1층 전시실에서 진행된다.
전시의 주제는 급변하는 사회 속 공동체의 미래와 박물관의 역할이다. 범어사 성보박물관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이 사업에 선정되며, 지역문화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고유의 불교문화유산과 현대미술을 한자리에 선보이며, 총 3부로 구성됐다. 구성은 고통과 고뇌의 시간을 건너는 여정을 통해 끝내 평화와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담았다.

1부는 ‘고해, 고뇌의 바다’이다.
전시의 첫 장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의 고통과 혼란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희망의 서사를 담고 있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독립운동가 동농 김가진(1846~1922)의 ‘금어선원’ 현판과 해강 김규진, 죽농 안순환의 ‘범어사’ 현판이 최초 공개된다. 김가진은 조선민족대동단 창단자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고문을 지낸 인물로, 예술성과 역사성이 결합된 그의 필적은 이번 전시의 핵심 유물 중 하나다.
이와 함께 한일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사명대사 진영’과 2025년 조선통신사선의 오사카 항로 재현 영상도 소개된다. 이 영상은 부산문화재단과 국립해양유산연구소가 제작한 것으로, 조선통신사의 평화 외교와 문화교류의 의미를 현대에 되새긴다.
또한, 2015년 스위스 취리히 경매에서 환수된 ‘극락암 칠성도’도 전시돼 해외 유출 문화재의 귀환이라는 상징성을 더한다.


2부는 ‘항해, 망망대해 반야선에 올라’를 주제로 선보인다.
두 번째 공간에서는 삶의 거센 파도를 넘어 고요함을 향해 나아가는 항해의 지혜를 조명한다. 일제강점기 유리건판에 남겨진 ‘조계문’, ‘보제루’, ‘제일선원’, ‘무량수각’ 등의 범어사 현판들이 전시되며, 과거의 기록을 통해 현재의 성찰을 이끈다.
특히,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의 서체가 담긴 현판들은 당대 서예가들의 예술성과 함께 불교적 가르침의 깊이를 전한다.
이 공간에서 마주하는 ‘백의관음보살도’는 깎아지른 절벽과 해수면을 배경으로 자비의 시선을 건네는 관세음보살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전시 제목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大慈大悲’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관람객의 내면을 어루만진다.


3부는 ‘그리고 평화, 파랑새를 찾다’라는 제목으로 대중을 만난다.
전시는 관세음보살의 상징이자, 마음의 평화를 뜻하는 ‘파랑새’를 통해 삶의 마무리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대웅전 영산회상도’, 추사체의 ‘무량수각’, ‘미륵전’ 현판 등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서는 상징들이 전시되며, 관람객은 마치 산사를 따라 천천히 나아가는 듯한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역사적 유물뿐 아니라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커뮤니티 아티스트 김정주와 조각가 우징은 버려진 물건, 철의 녹 등을 예술 매체로 삼아, 현대인의 무게와 희망을 표현했다.
김정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와인 코르크, 병뚜껑 등 일상의 폐기물을 예술로 재탄생시키며, 관객이 직접 소리를 내는 참여형 작품 ‘해조음관세음보살’로 감각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징의 ‘무거운 가방’과 ‘관폭도’, ‘사라질 기억’은 고행과 수행, 그리고 자연의 순리를 상징하며, 철의 재질을 통해 인간 내면의 무게와 기억을 묵직하게 표현한다.
우징은 30년 가까이 철을 다뤄온 조각가로, 시간이 흐르며 금속 표면에 생기는 ‘녹’을 창작의 핵심 재료로 삼는다. 그는 철이 자연 속에서 부식되고 녹슬어 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 존재 역시 시간과 고통, 자연의 이치 속에서 변화하고 소멸해가는 흐름을 담아낸다.
‘무거운 가방’은 너무 무거워 들 수 없는 철가방을 통해 현대인의 짐과 고단한 삶을 상징하고, ‘관폭도’는 선비들이 자연을 벗 삼아 스스로를 돌아보았던 전통적 사유를 이어받아, 녹물로 폭포를 그려낸 작품이다. ‘사라질 기억’은 녹슨 철과 산의 형상을 결합하여, 무거운 시간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을 조형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단단한 철을 매개로 하여 존재의 본질과 시간, 자연, 고통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관람자에게 묵직한 감정적 울림을 전한다.
정오 스님은 “삶은 고해다. 모두가 고통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때론 유난히 높은 파도 앞에 선 것처럼 느껴지지만, 멈추지 않고 나아가면 평화의 바다에 다다를 수 있다”며 “이번 전시가 고해를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관세음보살의 자비와 어머니의 마음처럼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범어사 성보박물관은 이번 전시와 연계해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도 마련할 예정이다. 자세한 일정은 박물관 홈페이지(www.beomeomuseum.org)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051)508-6139 하성미 부산주재기자

